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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장이 의 이야기</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link>
    <description>흙손하나들고 사우디.수단아프리카 리비아 동남아싱가폴을 누빈미쟁이</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8 May 2026 09:28:53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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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이삭주어</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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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벽체가움직여</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31</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리비아 대학교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때의 일이다.&lt;br /&gt;학교 건물이라 그런지 내부 천장은 유난히 높았다. 아마 체육관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반 건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공간이었고, 벽체 높이만 해도 6미터가 훌쩍 넘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였다. 당시 우리는 비계 위에 올라가 그 거대한 벽면을 미장하는 작업을 맡고 있었다.&lt;br /&gt;작업은 늘 그렇듯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처럼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몰탈을 배합하고, 비계 위로 재료를 올리고, 한쪽 벽면을 따라 차례차례 흙손질을 해나갔다. 높은 곳에서의 작업은 늘 긴장감이 따랐지만, 해외 현장에서 오래 일한 우리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위험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하루 물량을 맞춰야 했고, 그날 해야 할 벽면은 끝내야만 했다.&lt;br /&gt;그날도 우리 팀은 말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몰탈을 올리고, 누군가는 흙손으로 벽을 펴 바르고, 또 누군가는 수직과 수평을 확인하며 벽면을 다듬고 있었다. 높은 천장 아래 울려 퍼지는 쇠흙손 소리와 사람들의 짧은 말소리만이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lt;br /&gt;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lt;br /&gt;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인 줄 알았다. 높은 비계 위에서 오랜 시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작업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앞의 벽이 조금씩 흔들리는 듯 보였다. 마치 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미세하게 출렁거렸다. 나는 순간 손을 멈추고 눈을 비볐다. 그러나 이상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lt;br /&gt;조금 뒤에는 비계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했고, 머릿속은 멍해졌다. 땀이 흐르는 것도 아닌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순간 &amp;lsquo;내가 잘못된 건가&amp;rsquo;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옆에서 작업하던 동료 한 명이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진 채 비계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았다.&lt;br /&gt;&amp;ldquo;형님&amp;hellip; 이상하지 않습니까?&amp;rdquo;&lt;br /&gt;그 말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비슷한 증상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래를 못 쳐다보겠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빙빙 돈다고 했다. 높은 천장과 밀폐된 공간, 끝없이 반복되는 벽면, 그리고 긴장 속에서 이어지는 작업이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lt;br /&gt;특히 천장이 너무 높다 보니 공간감각이 흐려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닥이 멀게 느껴지고, 벽면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마치 벽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 폐쇄된 공간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는 그런 것을 알 리 없었다. 그저 &amp;ldquo;사람 미치겠다&amp;rdquo;라는 말만 반복하며 겨우 웃어넘길 뿐이었다.&lt;br /&gt;해외 건설현장이라는 곳은 늘 위험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높은 곳에서 일하는 공포, 낯선 환경, 뜨거운 더위, 끝없는 노동&amp;hellip;. 그러나 우리는 누구 하나 쉽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가족을 위해, 삶을 버티기 위해 타국까지 흘러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lt;br /&gt;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리비아 대학교의 높고 거대한 벽면이 가끔 꿈처럼 떠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던 회색 벽, 비계 위에서 느꼈던 아찔한 공포, 그리고 말없이 흙손을 움직이던 동료들의 모습까지&amp;hellip;. 그 시절 우리는 젊었고, 두려움을 숨긴 채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지중해 리비아</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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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May 2026 17:17: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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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장이란[미쟁이]</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30</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람들은 흔히 미장 일을 바라보며 말한다.&lt;br /&gt;&amp;ldquo;저건 그냥 흙손으로 쓱쓱 바르면 되는 거 아니냐&amp;rdquo;고.&lt;br /&gt;멀리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고, 시멘트 몰탈을 벽에 펴 바르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쇠흙손 하나 손에 쥐여주고 직접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몰탈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쇠흙손과 고대판의 각도가 정확하게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몰탈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손목에는 힘만 들어간다.&lt;br /&gt;설령 어렵게 몰탈을 떴다 하더라도 그것을 벽에 제대로 붙이는 일은 더 어렵다. 벽체에 밀착시키며 바르기 위해서는 손목의 각도와 힘이 일정해야 한다. 보통 45도 안팎의 미세한 각도를 유지해야 매끄럽게 펴지는데,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 없는 사람은 벽에 바르는 순간 몰탈이 뭉개지거나 떨어져 버린다. 그러나 오랜 세월 숙련된 미장공들은 한 번에 몰탈을 떠서 50~60센티 가까이 부드럽게 밀어 올린다.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몸에 밴 감각이며,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이다.&lt;br /&gt;벽이라는 것도 겉으로 보기엔 반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수평자를 대보면 대부분 틀어져 있다. 벽돌벽이든, 블록벽이든, 콘크리트벽이든 완벽한 수직과 수평을 가진 벽은 드물다. 그래서 미장이라는 작업은 단순히 바르는 일이 아니다. 들어간 곳은 채우고, 튀어나온 곳은 깎아내며 눈으로 수직과 수평을 맞춰간다. 결국 울퉁불퉁한 벽면을 가장 아름답고 반듯한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미장이다.&lt;br /&gt;그래서 옛사람들은 &amp;lsquo;아름다울 미(美)&amp;rsquo; 자를 써서 미장이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벽을 바르는 사람이 아니라, 거친 벽면에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장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lt;br /&gt;나는 그렇게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현장을 떠돌며 살아왔다. 한국의 건설현장은 물론이고,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사우디의 뜨거운 사막과 수단의 황량한 벌판, 리비아의 낯선 도시, 그리고 싱가포르의 습한 공기 속에서도 흙손 하나를 손에 쥐고 살아남아야 했다. 젊은 날에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났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외로움도 많았고, 후회도 있었다. 때로는 &amp;ldquo;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amp;rdquo; 하는 자책도 있었다.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 없이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lt;br /&gt;그러나 지금 이 나이가 되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결국 나를 지탱해준 것은 거창한 학벌도, 재산도 아니었다. 바로 내 두 손에 익은 미장 기술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 세상을 버틸 힘을 준 것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해준 것도, 먼 타국에서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도 결국은 흙손 하나였다.&lt;br /&gt;세월이 흐르며 몸은 늙어가고 손마디는 굳어졌지만, 아직도 벽 앞에 서면 본능처럼 손이 움직인다. 벽의 굴곡이 눈에 들어오고, 어디를 채워야 하고 어디를 깎아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몸으로 배운 삶의 흔적이다.&lt;br /&gt;돌이켜보면 내 인생 역시 미장과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삐뚤어진 시간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무너질 것 같은 순간들을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lt;/p&gt;</description>
      <category>지중해 리비아</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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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7 May 2026 16:56: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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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낯선 풍경: 산유국의 풍요 뒤에 숨겨진 '배급'의 역설
​우리가 처음 마주한 그곳의 아침은 생경함 그 자체였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채 떠오르기</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9</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낯선 풍경: 산유국의 풍요 뒤에 숨겨진 '배급'의 역설&lt;br /&gt;​우리가 처음 마주한 그곳의 아침은 생경함 그 자체였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채 떠오르기 전부터 특정 장소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문을 던졌습니다. 알고 보니 그 줄은 다름 아닌 아침 식사용 '빵'을 배급받기 위한 행렬이었습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몸소 일구며 산유국의 부유함을 기대하고 온 우리에게, 세계적인 석유 부국에서 먹을거리를 배급받는 모습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lt;br /&gt;​왜 산유국에서 빵을 배급했을까?&lt;br /&gt;​당시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사회주의적 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하던 국가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철저한 친서방 자본주의 체제였다면, 이곳은 국가가 모든 자원을 통제하고 부를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산유국임에도 빵 배급제를 시행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lt;br /&gt;​국가 주도의 물가 안정화 정책: 정부는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주식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자 했습니다. 시장 경제에 맡기면 가격이 뛸 수 있으니, 국가가 직접 밀가루를 수입하고 공장에서 구워낸 뒤 일정한 양을 공평하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lt;br /&gt;​농업 기반의 취약성과 수입 의존: 석유는 넘쳐났지만, 척박한 기후 탓에 식량 자급률은 낮았습니다. 오일머니로 식량을 대량 수입해 오더라도 유통망이 국영 체제이다 보니, 효율적인 시장 공급보다는 관리하기 쉬운 배급 방식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lt;br /&gt;​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천: 모든 국민이 굶지 않고 똑같이 먹는다는 상징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생산 동기를 저하시켰고, 물건이 귀해지는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현상을 낳았습니다.&lt;br /&gt;​샘소나이트 가방 광풍과 '싹쓸이'의 기억&lt;br /&gt;​당시 한국 근로자들 사이에서 '샘소나이트(Samsonite)' 가방은 단순한 짐가방 그 이상이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갈 때 가족들에게 줄 선물과 귀한 물건들을 가득 담을 '부의 상징'이자 '성실함의 훈장'과도 같았습니다.&lt;br /&gt;​이 가방은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국영 백화점에 물건이 입고된다는 소문이 돌면, 한국 근로자들은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 달려가 진열대를 비웠습니다. 이른바 '싹쓸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 못 사는 기이한 경제 구조 속에서, 한국인의 압도적인 구매력과 정보력은 현지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lt;br /&gt;​결국, 현지 당국은 **'한국인 1인당 구매 제한'**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물건이 들어오는 시점에만 살 수 있는 한정된 기회 속에서, 한국인들의 뜨거운 구매 열기는 사회주의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본주의적 활력이기도 했습니다.&lt;br /&gt;​사우디와는 달랐던, 이질적인 무슬림 국가의 경험&lt;br /&gt;​우리에게 익숙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같은 이슬람 국가였지만, 그 결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우디가 화려한 쇼핑몰과 넘쳐나는 수입품으로 자본주의의 향기를 풍겼다면, 우리가 마주한 그곳은 같은 알라를 믿으면서도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배급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lt;br /&gt;​아침마다 빵 줄을 서는 현지인들의 무기력한 모습과, 단 하나의 가방이라도 더 구하려 발을 동동 굴렀던 우리 한국 근로자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풍요로운 자원을 가졌음에도 시스템의 차이로 인해 빵 한 덩이를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의 풍경은, 경제 체제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역사적 증언이 되었습니다.&lt;br /&gt;​열사의 땅에서 흘린 땀방울과 함께 겪었던 그 이질적인 사회주의의 기억은, 지금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만든 밑거름이자 우리 세대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지중해 리비아</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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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6 May 2026 17:10: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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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리비아 벵가지 학교 공사</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8</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리비아 벵가지 학교 공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은 큰 문제 없이 돌아갔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의 삶은 단조롭고 반복적이었다. 휴일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내 PX에 모여 간단한 물건을 사거나 서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는 환경 속에서 그마저도 하나의 작은 위안이었고, 어떤 날은 숙소에 누워 그저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lt;br /&gt;회사에서는 매주 벵가지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운영했다. 이 버스는 정기적으로 왕복 운행을 했지만, 실제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부는 시내에 나가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잠시나마 바깥 공기를 느끼기 위해 이용했고, 또 극히 일부는 성당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굳이 나가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의 이동 자체가 조심스러웠고,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lt;br /&gt;해외 근로자들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와 달리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고, 그만큼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했다. 당시에는 1년 계약이 관례였고, 회사가 정한 규범과 질서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조직의 규율이 우선이었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는 조치가 따랐다.&lt;br /&gt;특히 회사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 강제 귀국 조치가 내려질 수 있었다. 이 조치는 단순한 귀국이 아니라 상당한 부담을 동반했다. 계약 기간 6개월 이전에 강제 귀국이 될 경우에는 왕복 항공료를 본인이 부담해야 했고, 6개월이 지난 이후라도 편도 항공료는 반드시 물어야 했다. 당시 기준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누구도 이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긴장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더욱이 리비아는 당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였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시선과 통제 또한 엄격한 편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일하러 온 사람들이었지만, 그 환경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조심하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괜한 오해나 문제를 피하기 위해 행동 하나, 말 한마디까지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lt;br /&gt;이처럼 벵가지에서의 생활은 일과 휴식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삶, 그것이 바로 당시 해외 근로자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묵묵히 하루를 버텨내며, 가족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미장기술</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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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jjs419007.tistory.com/228#entry228comment</comments>
      <pubDate>Wed, 6 May 2026 10:07: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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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쥬베일 건설 현장의 명암: 기계 미장의 효율과 치명적 단점​1970년대 후반,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해수담수화 주택 건설 프로젝트(Jubail</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7</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쥬베일 건설 현장의 명암: 기계 미장의 효율과 치명적 단점&lt;br /&gt;​1970년대 후반,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해수담수화 주택 건설 프로젝트(Jubail Desalination Housing Project)는 그 규모만큼이나 새로운 시도가 가득했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공기 단축과 효율성을 위해 도입된 **기계 미장(스프레이 공법)**은 넓은 면적을 시공할 때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실상은 기계가 가진 수치상의 성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습니다.&lt;br /&gt;​1.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섬세함: '하까리'와 좁은 면적의 한계&lt;br /&gt;​기계 미장의 가장 큰 맹점은 섬세한 디테일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넓은 벽면을 훑고 지나갈 때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이른바 **'하까리(창틀 및 개구부 주위)'**와 같은 좁은 구역이나 정교한 마무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기계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lt;br /&gt;​창틀의 수직과 수평을 맞추고 매끄럽게 각을 잡는 작업은 오직 숙련된 미장공의 손끝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결국 기계가 지나간 자리 뒤에는 반드시 미장공이 따로 붙어 일일이 수작업으로 보완해야 했고, 이는 인력 효율 면에서 오히려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lt;br /&gt;​2. 수분 조절의 난제와 시공 품질의 저하&lt;br /&gt;​벽체 미장 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반죽의 수분 함량입니다. 미장공이 손으로 작업할 때는 수분이 너무 많으면 두께 조절이 어렵고 흘러내리기 때문에 적절한 점도를 유지하는 것이 기술입니다. 반면, 기계 미장은 강력한 공기압(Air Pressure)을 이용해 몰탈을 뿜어내는 방식이기에 어느 정도 두께를 한 번에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lt;br /&gt;​그러나 기계로 분사된 몰탈은 수분 분포가 일정하지 않거나 공기압의 힘에만 의존하다 보니, 숙련공이 흙손으로 꾹꾹 눌러 바르는 밀착력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벽체 면의 평탄도와 밀도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lt;br /&gt;​3. 배합비 불일치가 불러온 대재앙: 크랙과 재시공&lt;br /&gt;​가장 심각한 문제는 몰탈 배합비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당시 사우디 주택은 주로 시멘트 벽돌(블록)로 시공되었으며, 블록 벽체에는 통상 **3:1(모래:시멘트)**의 비율이 표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계 미장 장비는 이 3:1 비율의 뻑뻑한 몰탈을 넣으면 노즐이 수시로 막히는 고질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lt;br /&gt;​현장에서는 기계 가동을 멈추지 않기 위해 장비가 막히지 않는 수준인 2:1 비율로 시멘트 함량을 높여 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몰탈은 블록 벽체와의 수축 팽창률 차이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벽 전체에 거미줄 같은 **크랙(Crack)**이 발생하고 재료 분리 현상이 일어났습니다.&lt;br /&gt;​4. 기술의 퇴장과 숙련공의 가치 확인&lt;br /&gt;​결국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공한 벽체들을 다시 뜯어내고 재시공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품질 관리에 비상이 걸리자 기고만장했던 기계 미장은 결국 멈춰 서야만 했습니다. 그 후 기계는 오직 '시다지(초벌 작업)' 용도로만 격하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거친 바탕면을 만드는 데에만 보조적으로 활용되었을 뿐, 최종 마무리는 다시 한국 미장공들의 정교한 흙손질에 맡겨지게 된 것입니다.&lt;br /&gt;​정리하며&lt;br /&gt;쥬베일의 경험은 건설 현장에서 &quot;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품질&quot;이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속도를 앞설 수는 있어도, 현장의 변수에 대응하는 숙련공의 감각과 원칙을 지키는 정직한 배합은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례였습니다.&amp;nbsp; &amp;nbsp; &amp;nbsp; 훗날한국에서 그때의경험을바탕으로 미장기계을 수입해 시공했던 경험은 뒤로하고&amp;nbsp; 다시 리비아벵가지 로 돌아갑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미장기술</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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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5 May 2026 20:56: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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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우디 회고록] 1979년 쥬베일, 미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독일제 기계'와의 첫 만남
​</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6</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우디 회고록] 1979년 쥬베일, 미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독일제 기계'와의 첫 만남&lt;br /&gt;​1. &quot;기계가 미장을 한다고?&quot; : 의구심 속의 첫 대면&lt;br /&gt;​1970년대 후반, 중동 건설 붐의 중심지였던 사우디 쥬베일 현장은 전 세계의 첨단 공법이 집결하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기술자들에게 '미장'이란 모름지기 흙손(Trowel) 하나에 의지해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며 벽을 매끄럽게 다듬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노동이었습니다.&lt;br /&gt;​그러던 어느 날, 독일에서 수입된 거대한 미장 기계가 현장에 등장했습니다. 기계가 미장을 한다는 소리에 현장 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quot;사람 손이 가야 하는 정교한 작업을 어떻게 쇳덩어리가 대신한다는 말인가?&quot;라는 불신과 호기심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독일에서 파견된 4명의 시범팀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lt;br /&gt;​2. 분업과 효율의 극치: 독일식 기계 미장 시스템&lt;br /&gt;​독일 팀의 작업 공정은 마치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완벽한 분업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었습니다.&lt;br /&gt;​재료의 배합과 공급: 첫 번째 작업자는 시멘트와 모래를 정교한 비율로 믹서기에 투입했습니다. 적절히 배합된 반죽은 기계에 부착된 홉바(Hopper)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갔습니다.&lt;br /&gt;​강력한 압송 시스템: 홉바에 담긴 반죽은 '로터 스테이터(Rotor Stator)'라는 핵심 부품을 통과하며 강력한 압력을 받았습니다. 이 압력은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했던 50~60미터에 달하는 긴 호스를 타고 막힘없이 흘러나갔습니다.&lt;br /&gt;​스프레이 건의 마법: 호스 끝단에는 스프레이 건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에어 콤프레셔 호스를 연결하자, 고압의 공기와 함께 미장 반죽이 벽체에 강력하게 분사되었습니다.&lt;br /&gt;​전문가의 마무리: 기계가 지나간 자리, 즉 벽면에 골고루 뿌려진 반죽 뒤로 독일 미장공들이 시차를 두고 투입되었습니다. 그들은 거칠게 붙은 반죽의 면을 고르고 정교하게 마무리하며 순식간에 매끄러운 벽면을 완성해 나갔습니다.&lt;br /&gt;​3. 황당함이 감탄으로, 기술의 시대를 직감하다&lt;br /&gt;​우리 기술자들이 며칠에 걸쳐 매달려야 할 면적을 기계는 단 몇 시간 만에 '뿌려대며' 해결했습니다. 처음 기계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황당함'은 작업이 진행될수록 깊은 '감탄'으로 변했습니다. 인간의 근력이 아닌 기계의 압력과 공기의 힘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작업 속도는 건설 현장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lt;br /&gt;​그것은 단순한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미장이라는 공종이 '숙련공의 예술'에서 '엔지니어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쥬베일의 뜨거운 바람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기계 미장이라는 새로운 문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lt;br /&gt;​맺음말: 기계 미장의 명(明)과 암(暗)을 예고하며&lt;br /&gt;​처음 접한 독일제 미장 기계는 우리에게 놀라운 생산성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기술의 도입이 가져오는 새로운 고민거리들도 함께 안겨주었습니다. 기계가 주는 편리함 이면에 숨겨진 유지보수의 어려움, 숙련도에 따른 품질의 차이, 그리고 현장 적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들까지.&lt;br /&gt;​다음 편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기계 미장의 명(明)과 암(暗)'**에 대해 본격적인 시리즈를 이어가겠습니다. 1979년 그 뜨거웠던 쥬베일의 기억은 지금도 기계의 굉음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 숨 쉽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미장기술</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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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5 May 2026 18:31: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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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몸으로 버텨온 세월, 지금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5</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몸으로 버텨온 세월, 지금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lt;br /&gt;내용:&lt;br /&gt;나는 평생을 몸으로 일하며 살아왔다. 기술 하나로 먹고살았고,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던 시절도 많았다.&lt;br /&gt;배우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내 자식만큼은 공부를 시키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lt;br /&gt;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참 좋은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할 수 있는 길도 많고, 기회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모습도 보인다.&lt;br /&gt;우리 세대는 포기라는 선택지가 없었다. 힘들어도 그냥 해야 했고, 버텨야 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lt;br /&gt;나는 말하고 싶다.&lt;br /&gt;인생은 생각보다 길다.&lt;br /&gt;지금 힘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lt;br /&gt;조금만 더 버티면, 반드시 길이 보인다.&lt;br /&gt;그건 내가 살아오면서 직접 느낀 진짜 이야기다.&lt;/p&gt;</description>
      <category>해외현장경험담</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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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5 May 2026 15:58: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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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단에서 만난 딩크족, 느리지만 따뜻했던 사람들</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수단에서 만난 딩크족, 느리지만 따뜻했던 사람들&lt;br /&gt;내용:&lt;br /&gt;사우디 이후 수단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amp;lsquo;딩크족&amp;rsquo;이라 불리는 현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다.&lt;br /&gt;그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생활 방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lt;br /&gt;미장 작업을 할 때면 그들은 몰탈을 삽으로 섞어서 우리에게 가져다주고, 물통에 물을 채워주었다. 일이 시작될 때는 분주했지만,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들은 그늘에 앉아 쉬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lt;br /&gt;처음에는 &amp;lsquo;왜 저렇게 느릴까&amp;rsquo;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amp;lsquo;저게 사람 사는 모습이구나&amp;rsquo;라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수단 사람들은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를 돕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lt;br /&gt;그곳에서 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해외현장경험담</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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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5 May 2026 15:57: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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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목:
사우디 쥬베일 건설현장에서 버틴 시간,</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3</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사우디 쥬베일 건설현장에서 버틴 시간, 내 인생을 바꾼 순간들&lt;br /&gt;내용:&lt;br /&gt;내가 처음 사우디 쥬베일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amp;lsquo;숨이 막히는 더위&amp;rsquo;였다. 낮 기온이 45도를 넘는 날이 계속되었고, 작업을 시작하면 땀이 아니라 물이 흐르는 것처럼 옷이 젖었다.&lt;br /&gt;당시 나는 미장공으로 일했다. 시멘트를 반죽하고 벽에 바르는 단순한 일이지만, 그 환경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아와 얼굴과 눈을 때렸고, 입안까지 모래가 들어왔다.&lt;br /&gt;점심시간이 되면 철판 위에 계란을 깨면 익을 정도로 뜨거웠다. 물은 항상 부족했고, 한 모금 한 모금 아껴 마셔야 했다. 그때는 물 한 잔이 그렇게 귀한 줄 처음 알았다.&lt;br /&gt;현장에는 나처럼 가족을 위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서로 말은 많이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했다. 힘든 작업이 끝나고 나면 작은 웃음 하나에도 큰 위로가 되었다.&lt;br /&gt;그 시절을 버텨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배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amp;lsquo;버티는 힘&amp;rsquo;이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해외현장경험담</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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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5 May 2026 15:55: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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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벵가지 성당에서 얻은 작은 위안의 시간
리비아 벵가지에서 지내던 시절,
저는 어느 순간부터 매주 성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기독교 신자</title>
      <link>https://sjjs419007.tistory.com/222</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벵가지 성당에서 얻은 작은 위안의 시간&lt;br /&gt;리비아 벵가지에서 지내던 시절,&lt;br /&gt;저는 어느 순간부터 매주 성당을 찾게 되었습니다.&lt;br /&gt;원래 저는 기독교 신자였지만,&lt;br /&gt;그곳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신앙을 넘어&lt;br /&gt;마음의 위안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lt;br /&gt;거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lt;br /&gt;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칠 때가 많았습니다.&lt;br /&gt;그럴 때마다 성당에 가면&lt;br /&gt;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lt;br /&gt;그곳에는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lt;br /&gt;처음에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었지만,&lt;br /&gt;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lt;br /&gt;그들은 대부분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lt;br /&gt;낯선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는 삶은&lt;br /&gt;생각보다 훨씬 힘든 것이었습니다.&lt;br /&gt;그래서인지 그 성당은&lt;br /&gt;그들에게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lt;br /&gt;서로를 만나는 소중한 장소였습니다.&lt;br /&gt;그곳에서 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lt;br /&gt;필리핀 사람들 중에 가톨릭 신자가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lt;br /&gt;미사가 끝나면&lt;br /&gt;사람들은 하나둘씩 작은 다과를 꺼내놓았습니다.&lt;br /&gt;조금씩 가져온 음식들이었지만&lt;br /&gt;그 안에는 각자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lt;br /&gt;서로의 음식을 나누며&lt;br /&gt;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lt;br /&gt;고향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lt;br /&gt;힘들었던 하루의 이야기,&lt;br /&gt;그리고 웃으며 넘기려 했던 삶의 무게까지.&lt;br /&gt;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아도&lt;br /&gt;그 감정은 충분히 전해졌습니다.&lt;br /&gt;그 시간 속에서&lt;br /&gt;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lt;br /&gt;조용히 힘을 나누고 있었습니다.&lt;br /&gt;저 역시 그 자리에 앉아&lt;br /&gt;그들의 이야기를 듣고,&lt;br /&gt;가끔은 함께 웃으며&lt;br /&gt;그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갔습니다.&lt;br /&gt;돌이켜보면&lt;br /&gt;그 성당은 단순한 종교의 공간이 아니라&lt;br /&gt;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lt;br /&gt;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안식처였습니다.&lt;br /&gt;그리고 그곳에서의 시간은&lt;br /&gt;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해외현장경험담</category>
      <author>이삭주어</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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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 May 2026 01:11: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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