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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미장 일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건 그냥 흙손으로 쓱쓱 바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멀리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고, 시멘트 몰탈을 벽에 펴 바르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쇠흙손 하나 손에 쥐여주고 직접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몰탈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쇠흙손과 고대판의 각도가 정확하게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몰탈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손목에는 힘만 들어간다.
설령 어렵게 몰탈을 떴다 하더라도 그것을 벽에 제대로 붙이는 일은 더 어렵다. 벽체에 밀착시키며 바르기 위해서는 손목의 각도와 힘이 일정해야 한다. 보통 45도 안팎의 미세한 각도를 유지해야 매끄럽게 펴지는데,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 없는 사람은 벽에 바르는 순간 몰탈이 뭉개지거나 떨어져 버린다. 그러나 오랜 세월 숙련된 미장공들은 한 번에 몰탈을 떠서 50~60센티 가까이 부드럽게 밀어 올린다.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몸에 밴 감각이며,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이다.
벽이라는 것도 겉으로 보기엔 반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수평자를 대보면 대부분 틀어져 있다. 벽돌벽이든, 블록벽이든, 콘크리트벽이든 완벽한 수직과 수평을 가진 벽은 드물다. 그래서 미장이라는 작업은 단순히 바르는 일이 아니다. 들어간 곳은 채우고, 튀어나온 곳은 깎아내며 눈으로 수직과 수평을 맞춰간다. 결국 울퉁불퉁한 벽면을 가장 아름답고 반듯한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미장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아름다울 미(美)’ 자를 써서 미장이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벽을 바르는 사람이 아니라, 거친 벽면에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장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현장을 떠돌며 살아왔다. 한국의 건설현장은 물론이고,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사우디의 뜨거운 사막과 수단의 황량한 벌판, 리비아의 낯선 도시, 그리고 싱가포르의 습한 공기 속에서도 흙손 하나를 손에 쥐고 살아남아야 했다. 젊은 날에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났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외로움도 많았고, 후회도 있었다.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자책도 있었다.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 없이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가 되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결국 나를 지탱해준 것은 거창한 학벌도, 재산도 아니었다. 바로 내 두 손에 익은 미장 기술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 세상을 버틸 힘을 준 것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해준 것도, 먼 타국에서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도 결국은 흙손 하나였다.
세월이 흐르며 몸은 늙어가고 손마디는 굳어졌지만, 아직도 벽 앞에 서면 본능처럼 손이 움직인다. 벽의 굴곡이 눈에 들어오고, 어디를 채워야 하고 어디를 깎아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몸으로 배운 삶의 흔적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 역시 미장과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삐뚤어진 시간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무너질 것 같은 순간들을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지중해 리비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